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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 찾아온 폐암과 뇌전이, 다시 만난 행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1-04-16 11:02 | 57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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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 찾아온 폐암과 뇌전이, 다시 만난 행운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입력 2021년 04월 13일 15: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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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희(68년생) | 광주광역시 거주. 폐암 4기 뇌전이.


전남 나주가 고향인 나는 학교를 마치고 바로 광주로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로는 쭉 앞만 보고 달려 온 인생이었다. 건축설비 일을 7년 정도 했고 그다음에는 주유소를 차려 운영했다. 본업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주유소를 하면서 건축소도 같이 병행했고 그러다가 인테리어 업체도 운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부동산 투자업도 같이 했다. 일이 너무 많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집사람과 아이들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할 의무가 있었으며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우리 나이로 51세가 되면서 삶의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암을 진단받은 것이다.

그나마 결혼이 일러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병원에서는 첫 진단 후 내게 남은 여명이 길어야 6개월 이내라고 판단했다. 의사 선생님들은 이런 사실을 비밀스럽게 보호자를 불러 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모두가 알게 되는 사실이 되어 버린다. 나는 내 남은 시간을 알게 되고는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툭툭 흘러내렸고 행여 누가 볼까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4기 암환자라는 현실이 인식되는 순간부터 절망과 슬픔에 아득한 채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삶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다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원숙해지고 안정적인 오십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당하기 힘든 불행에 침몰하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말 그대로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것뿐인가. 그렇지만 우리의 삶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절망이었지만 지금은 희망이기 때문이다.

암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증상은 처음에는 속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되고 가슴이 먹먹한 것이었다. 근처 병원에서 간단하게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아서 조금 더 큰 대학병원을 향했다. CT를 찍었는데 조직검사를 받아보라는 것이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으며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을 예약하고 찾았다. 그리고 암이 확진되었다.

내 평생 잊으려야 잊을 수도 없는 2018년 12월 17일이었다. 암은 폐에서 시작되어 뇌의 여러 부분과 흉골, 좌측골반뼈, 우측 고관절 뼈 등으로 퍼져있는 상태였다. 이미 여러 곳에 전이되어 수술은 불가능했고 방사선도 암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여 치료를 진행할 수 없었다. 담당 의료진은 이레사를 처방해 주었다. 아무 치료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던 듯하다. 이레사를 며칠 복용하면서 부작용이 심해졌다. 간 수치가 너무 올라 도저히 이레사 복용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타세바로 바꾸어 일 년 반 정도를 복용했다. 경구용 항암제를 복용하는 것 외에 치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너무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뼈로 암이 전이되어 진행되면서 온몸에는 통증이 시작되었고 뇌 여러 부위에 퍼진 암은 거동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나마 몸의 통증은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은 참고 버티다가 견딜 수 없으면 진통제를 써서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었지만 뇌로 전이된 암 때문에 생기는 두통과 어지럼증은 일반적인 편두통이나 이석증과 같은 귀 질환으로 나타나는 어지러움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심해져서 앉아있을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은 환자들과 같은 병실을 쓰면서 그분들의 치료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어느 날 뇌에 암이 있는 분이 방사선 치료를 받고 왔는데 치매와 기억상실 같은 증상이 곧바로 생겼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임종을 맞았다. 바로 한 병실에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 나니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저히 방사선 치료를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아 뇌에 방사선 쪼이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일상생활도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사는 날 동안은 온전한 정신으로 가족들을 알아보고 또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상태로 지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뇌에 방사선 치료를 받고 온 분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암담한 현실과 암이 너무도 두려웠지만 견디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대로 퇴원한 채로 검사만 받으러 다녔다. 일 년 정도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다녔는데 근처 화순에 좋은 대학병원이 있었기에 그곳으로 옮겼다. 어차피 타세바를 처방받고 사진을 찍고 검사를 하는 것이 전부인데 멀리 서울까지 다니는 것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타는 타세바 약과 광주에서 주는 약이 다른 약도 아닐 테지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서 가까워서 원할 때 병원을 찾을 수 있었고 진료 시간도 쫓기지 않고 여유 있게 궁금한 것을 충분히 물어볼 수 있고 친절하게 대답을 들을 수도 있었다. 서울에서는 넘치는 환자들 때문에 의료진은 항상 너무나도 바빴고 나도 쫓기듯 말만 듣고 황급히 나와야 했다. 잘 옮겼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뇌에 있는 암은 다발성이었으며 수술이나 방사선을 강행할 수 있었겠지만 그에 대한 부작용은 누구도 알 수 없었고 책임질 수도 없기 때문에 나는 그냥 치료를 포기한 상태였다. 결국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요양병원의 생활은 가끔 컨디션이 좋아 동병상련의 정을 나눌 수 있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가족들이 짊어질 짐의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요양병원 생활의 장점은 또한 여러 가지 정보를 나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쏠투비 운모가루도 그렇게 요양병원에서 알게 되었다. 주변의 한 암환자가 그것을 섭취하면서 좋아지는 것을 보았다. 나도 시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정보를 찾아보았다. 놀라운 사례들이 눈에 들어왔고 나처럼 뇌에 전이된 젊은 환자의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었다.

몸 여러 곳에 암이 퍼져 있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지럼증과 두통이었다. 앉기조차 힘들 정도로 어지러움은 나를 괴롭혔고 이것만 없어지면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것 같았다. 뇌에 전이되었던 환자의 사례는 나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의구심 또한 가득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고민했지만 결국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쏠투비 운모가루를 복용하기로 결심했다. 서울에 있는 티시바이오라는 회사와 연결되었고 한의원에서 처방받았다.

2020년 12월 29일의 일이었다. 처음 한 달 치를 용법에 맞게 복용하였다. 며칠이 지나자 머리에 약한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한 느낌이 오기 시작했으며 졸음이 쏟아졌다. 달리 할일도 없는 암환자였으므로 잠이 오면 그냥 잠을 잤다. 찌릿한 느낌은 암의 증상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한 달을 복용한 후에 나는 쏠투비 운모가루를 끊었다. 이로운 작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며 비용에 대한 부담이나 나의 상황에서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 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왼쪽 골반뼈의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두통과 어지럼증도 심해져갔다. 지난 1월에는 왼쪽 골반뼈의 통증 때문에 방사선 치료를 10회 진행했는데 다행히도 통증은 많이 줄어 진통제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뇌에 전이된 암이었다. 증상이 나빠져서 결국 응급실로 실려 갔고 다시 MRI 검사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잠시 중단했던 쏠투비 운모가루 복용을 다시 시작했다. 왜냐하면 요양병원에서 같이 복용하는 분에게서 조금씩 좋은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내다가 지난 3월 16일 MRI 검사에 대한 결과가 나왔는데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앞에 앉아 있던 담당의도 나만큼이나 놀라는 표정이었다. 사진 속에는 뇌에 있었던 암이 사라져 있었다. 암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놀라던 의료진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일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폐에서 시작되어 뇌로 전이된 암은 자그마치 10여 군데나 되는 곳에 다발성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는데 그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암이 없어져서인지 그 후로 머리를 들 수조차 없어 누워 있게 만들었던 두통과 어지럼증이 조금씩 사라졌고 이제는 일어나서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할 정도가 되었다. 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일상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 MRI에서는 뇌에 있던 암이 사라졌을 뿐더러 폐에 있던 종양의 크기도 반으로 줄어 있었다. 온몸에서 일어나던 통증은 진통제 없이도 견딜만해졌고 차츰차츰 정상적인 일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삶의 질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3개월 남짓한 동안 변화한 몸 상태는 정말로 놀라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 생긴 변화는 쏠투비 운모가루 외에는 별다른 점이 없다는 것으로 판단하여 앞으로 계속해서 복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몸 이곳저곳에는 많은 암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제 희망을 가져도 좋다는 신호가 생겨나고 있다. 그 동안 치료 과정과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너무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4기를 넘어 말기가 되어서야 암 진단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지 조심스럽게 새로운 인생 계획을 꿈꾸고 있다. 남은 여명이 6개월 미만이라고 했는데 벌써 2년 반 이상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책에서 인간의 수명 100년을 하루 24시간으로 비유했다. 그렇다면 나의 시계는 정오를 조금 넘겼을 뿐이다. 24시간을 모두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정오에 시간이 멈춘다는 것은 너무도 아깝다. 정오가 지난 지금부터는 눈물 대신 웃음으로 시간을 채워나갈 것이다. 내 인생의 시침이 멈추지 않도록 이제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대략 알게 된 것 같다.

지금보다 더 건강해져서 암환자 딱지를 떼어버린다면 살아 왔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꿀 것이다. 일보다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반짝반짝하게 채워나가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이 언제나 곁에 있으니 더 큰 용기도 낼 수 있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시침이 멈추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가장 큰 용기를 주었다. 앞으로 희망으로 가득 찬 하루를 채워나간다면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미래가 궁금해진다. 또한 지금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모든 이들도 건강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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